17일(현지시간)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핵심 곡물 반출항에 대대적인 타격을 가했다. 전날 밤부터 우크라 남부 이즈마일 주변 항구 시설을 맹렬히 폭격한 것이다.
현지 행정당국은 피격으로 발화된 불길을 모두 잡았다고 전했다. 다뉴브강 유역에 자리한 이즈마일은 지난주 이후 러시아군의 주요 표적이 돼 왔다. 추수철에 접어든 우크라산 밀을 비롯한 농산물의 해외 반출을 억제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 일대는 2023년 7월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을 파기한 이후, 흑해 뱃길을 대신해 우크라 농산물을 수출하는 핵심 통로로 활용돼 왔다.
흑해와 맞닿은 오데사 항만 일대도 러시아군의 타격권에 들었다. 오데사 현지 행정청은 심야 폭격 여파로 토고 국적 상선 한 척이 파손됐다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 국방부는 오데사항 내 화물선과 주변 물류 기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의 군용 무인기 보관소를 무력화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우크라 전력 및 난방 인프라를 겨냥한 공습도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 국영 에너지사 나프토가스는 최근 1주일 새 13차례, 연초부터 따지면 약 300차례 시설 피격을 당했다고 전했다. 현재 우크라군은 패트리엇 요격 체계를 비롯한 대공 방어 수단이 크게 부족해 러시아 미사일 요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맞선 우크라군의 반격도 거세다. 러시아 벨고로드 행정당국은 우크라발 미사일 공격으로 6명이 사망했다고 언급했으며, 아스트라한 일대 공장 지대도 폭격을 피하지 못했다. 우크라군이 명명한 '40일 작전'을 기점으로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의 발전소와 물류망을 집중 공략하자, 러시아군 역시 화력을 대폭 키워 맞불을 놓는 형국이다.
우크라의 잇단 후방 교란으로 러시아 내륙 곳곳에서는 심각한 유류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카스피해와 인접한 아스트라한 관할청은 전날 차량당 주유 가능 용량을 40ℓ로 제한하는 한편, 도심 주유소 일부를 임시 폐쇄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우랄 산맥 인근 오렌부르크 역시 이번 주부터 휘발유 및 디젤유 주유 한도를 설정하는 배급 체계를 가동 중이다.
러시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와일드베리스도 우크라군의 공격에 노출돼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날 모스크바주 일대에 쏟아진 우크라군의 대규모 공세로 와일드베리스 대형 창고가 들어선 포돌스크 일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
지난달 중순 이후 우크라군의 폭격에 노출된 와일드베리스 보관 시설은 적어도 20곳을 넘는다. 전체 보관 공간의 5분의 1이 소실돼 금전적 피해 규모만 최대 60억달러(약 8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온다. 물품을 잃고 도산 위기에 내몰린 입점 영세 상인들이 시중은행에 상환 유예를 호소하는 등 그 여파가 금융시장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우크라군이 러시아 후방의 인프라와 공급망을 집요하게 공략하는 배경에는 일반 대중의 전쟁 고통을 가중시켜 9월 총선을 목전에 둔 블라디미르 푸틴 체제의 지지 기반을 약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최근 러시아군이 무차별 보복에 나선 것 역시 선거를 앞두고 유류 대란과 배송 마비로 들끓는 민심을 달래려는 조급함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소속 안드레이 이사예프 원내부대표는 지난달 20일 우크라의 정유공장 폭격을 거론하며, 이는 정부의 실정이 아니라 적군의 만행으로 빚어진 사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9월 선거에서 여당의 안정적 과반 의석 확보를 저지하고 러시아 내부에 분열을 꾀하려는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