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이란의 군사 도발과 잇따른 상선 피격 사태 속에서도 걸프 지역 주요 산유국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위험천만한 '셔틀 운항' 방식으로 원유 수출을 강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지역 국가들은 초대형 유조선(VLCC)을 호르무즈 해협 안으로 들여보내 원유를 채운 뒤, 해협 외곽에서 대기 중인 다른 선박으로 화물을 이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미·이란 전쟁 발발 후 아시아를 비롯한 수입 업체들이 자사 선박의 걸프 해역 진입을 꺼리자 새롭게 떠오른 대안이다.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산유국들은 원유 판매를 중단하기보다 막대한 운임을 감수하는 편이 재정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우회 운송에는 한 번에 3000만∼4000만달러(403억∼537억원)가 든다. 보험료를 제외하더라도 배럴당 약 15∼20달러(2만∼2만7000원)가량의 비용이 추가되는 구조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에 따른 유조선 임대료도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걸프 지역에서 중국까지 원유를 운반하는 초대형 유조선 대여료는 전쟁 발발 전 하루 23만1400달러(약 3억원)에서 9월 말 기준 하루 120만달러(약 16억원) 위로 치솟았다.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서는 선원들을 붙잡기 위한 금전적 유인책도 상당하다.
인도, 필리핀, 중국 등에서 온 선원들은 평소보다 2∼3배 많은 월급을 받는다. 한 선원 인력 업체는 왕복 운항 조건으로 기관원 1년 치 임금을 훌쩍 넘는 최대 2만5000달러(약 3400만원)의 상여금까지 약속했다.
해운 중개사 E.A. 깁슨의 리처드 매슈스 이사는 선주들이 얻는 수백만달러의 이익에 비하면 선원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푼돈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기형적인 해상 운송이 보편화된 배경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인프라인 동서 송유관이 드론 공격을 받아 운영에 타격을 입은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도 하루 최대 700만배럴을 보낼 수 있는 동서 송유관이 최근 가동을 일부 재개하긴 했다. 하지만 수송 능력의 한계 탓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당분간 셔틀 운항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항해 과정의 위험성도 극심하다.
이 일대를 지나는 선박들은 밤이 되면 모든 창문을 가리고 불을 끈 채 이동한다. 운항 도중 수 시간씩 위치정보시스템(GPS) 연결이 끊어지기 때문에, 레이더로 주변 섬과 곶까지의 거리 및 각도를 측정해 현재 위치를 가늠하는 아슬아슬한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 피해도 속출하는 상황이다.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를 비롯한 여러 기관의 자료를 보면, 지난달 28일을 기점으로 호르무즈 해협 근방에서 7척의 선박이 피격됐다. 최근 2주 동안 이 해역 일대에서 피격된 상선은 총 9척이며, 그 여파로 선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