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영국이 자유무역협정(FTA) 개선협상을 타결했다. 이번 합의로 전기차와 K-푸드 등 한국 주력 수출품의 원산지 기준이 대폭 완화돼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양국 간 공급망 협력 체계가 공고해질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크리스 브라이언트(Chris Bryant) 영국 산업통상부 통상담당장관과 만나 ‘한-영 FTA 개선 협상’을 타결하고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는 양국 정상이 지난 6월 G7 정상회의 계기 회담에서 연내 타결에 합의한 지 6개월 만의 성과다.
이번 협상의 핵심 성과는 한국 기업들이 FTA 관세 혜택을 더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원산지 기준’을 현실화한 것이다. 이미 양국은 상품 시장을 대부분 개방(대영 수출품목 99.6% 무관세)한 상태이나, 엄격한 원산지 규정 탓에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우선 대영 수출의 36%를 차지하는 자동차 분야는 원산지 판정 시 요구되는 역내 부가가치 기준을 기존 55%에서 25%로 대폭 낮췄다.
배터리 원료(리튬, 흑연 등)를 수입에 의존해 부가가치 충족이 까다로웠던 전기차 업계가 안정적으로 무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돼 영국 시장 진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K-푸드와 K-뷰티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기존에는 만두, 김치, 떡볶이 등 가공식품 수출 시 밀가루나 채소 등 원재료가 모두 역내산이어야 무관세가 적용됐으나, 이번 개정으로 해당 요건이 삭제됐다.
이에 따라 제3국에서 재료를 수입해 한국에서 가공하더라도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화장품 등 화학제품 역시 국내에서 배합이나 혼합 등의 공정만 거치면 한국산으로 인정받는다.
시장 개방과 기업 지원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영국은 이번 협상을 통해 자국의 고속철 시장을 한국에 추가로 개방했다. 이는 기존에 한국만 일방적으로 개방했던 불균형을 해소하고, 유럽 철도 시장 진출을 노리는 국내 기업에 기회가 될 전망이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한국이 강점을 가진 ‘온라인 게임’ 시장을 추가 개방했다.
인력 이동의 걸림돌이었던 비자 제도도 개선됐다. 한국 기업이 영국에 제조공장을 설립할 때 엔지니어나 설비 유지·보수 전문인력을 파견하는 경우, 영어 능력 입증 없이도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본사 직원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인력도 초청이 가능해져 기업들의 현지 운영 리스크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양국은 변화하는 통상 환경에 맞춰 ‘공급망 협력’ 챕터를 신설했다. 희토류나 배터리 소재 등 핵심 품목에서 공급망 교란이 발생할 경우, 양국이 지정한 핫라인을 가동해 10일 이내에 긴급회의를 열고 대체 공급처 공유 등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디지털 무역 규범을 강화해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컴퓨팅 설비의 현지화 요구를 금지했다. 투자 분야에서는 1976년 체결된 낡은 투자보장협정(BIT)을 대체해, 투자자 보호와 정부의 규제 권한이 균형을 이룬 현대적인 투자 규범을 도입했다.
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 타결은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불확실해진 통상환경 속에서 핵심 파트너인 영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계기”라며 “디지털 무역, 공급망 안정화 등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할 포괄적 협력 규범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강조했다.